트럼프의 지시 준수 여부 고민

1978년 폴란드에서 본 영화 '카바레'의 충격

1978년, 나의 부모님은 처음으로 해외 여행을 떠나 폴란드를 방문했다. 모스크바로 돌아온 후, 어머니는 영화 '카바레'에 대한 이야기를 멈출 수 없었다. 이 영화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은 세 친구가 주말 여행을 마치고 카페에 들러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히틀러 유겐트 복장을 한 소년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위 사람들이 함께 노래하며 주인공들은 자신들이 소수임을 깨닫게 된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Tomorrow Belongs to Me"였다.

당시 나는 11살이었고 어머니가 '카바레'에 대해 이야기할 때 혼란스러웠다. 부모님이 실제로 카바레에 다녀와서 소련 체제의 속성을 깨달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년 뒤 내가 직접 영화를 보고서야 어머니가 옳았음을 깨달았다. 그 장면은 전체주의 지도자 아래에서 어울리지 않는 사회를 살아가는 느낌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지금의 미국 사회에서 느끼는 '예견적 순종'

성인이 되어 러시아에서 블라디미르 푸틴이 집권했을 때 이러한 경험을 직접 했다.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에서는 비슷한 일이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나에게는 대선 전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가 카말라 해리스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고, 메타를 재구성한 마크 저커버그의 결정이나 ABC 뉴스가 트럼프의 소송에 대응해 막대한 돈을 지불한 일들이 이어졌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부 웹사이트에서의 페이지 삭제가 아니라, 개인이나 민간 기관이 예견적인 순종을 통해 정부의 요구에 선제적으로 굴복하는 행위다. 예일 대학교의 역사학자 티모시 스나이더는 이것을 "anticipatory obedience"라 부르며, 권력에 맞서지 않고 미리 수용하는 행위가 권력에게 가능성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내 경험상 사람이나 기관이 자발적으로 권력을 양보하는 대부분의 경우, 이들은 두려움이 아닌 합리적인 논리에 의해 행동한다. 이러한 논리들은 일반적으로 다섯 가지 범주 중 하나에 속하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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